-2018년도 1분기 ‘BJC보도상’ 전문보도부문 수상작-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한 지난했던 작업

권지윤 SBS 뉴미디어국 제작부 기자

“이 세상에서 확실한 건 없다. 죽음과 세금을 빼곤...”

귀신같은 세금은 얼마나 철저한지 피할 방법이 없다. 더 가져가는 법은 있어도, 덜 가져가는 법은 없다. 월급명세서의 갑근세를 매달 확인하지만, 정작 내가 낸 세금으로 만들어진 국가예산의 사용처는 알긴 어렵다. 효율적 분배가 이뤄졌는지 파악하는 건 언감생심이다. ‘428조원’이라는 비현실적 규모, 복잡한 과정, 정보의 비대칭성 탓이다. 언론 역시 예산이 국가의 가장 중대한 재정활동이라는 걸 알지만, 이런 한계 탓에 단편적 비판에 그쳤다.

SBS <마부작침>과 <비디오머그>가 예산안을 집중적으로 취재한 이유다. 통장을 스쳐간 돈이지만 내 통장, 내 지갑에서 나온 예산이 허투루 쓰이는 걸 막기 위해, ‘호갱’이 되는 신세를 벗어나고자 형식적 검증이 아닌 전례 없는 정밀하고 치밀한 취재를 다짐했다. 다만, 각오는 결연했지만, 현실은 험난했다.

국회 예산 심의록 4,703장에 담긴 진실

‘공정하고 효과적인 자원 배분’이라는 예산의 대원칙을 따져보기 위해 예산 심의 과정이 담긴 국회 회의록 4,703장을 한 장씩 읽어나갔다. 정부의 사업 설명 자료와 대조 정리 분석하는데도 꼬박 한 달이 넘게 걸렸다. 몸에 기운이 빠지고, 시력은 나빠지고, 머리에 숫자가 가득해질 때 즈음 방향성을 잡을 수 있었다.

고난의 행군 덕분에 예산 심의 실태를 낱낱이 파헤칠 수 있었다. 예산 배정의 기준이 되는 보조금법과 시행령, 지침을 어긴 예산, 꼼수 예산 목록, 지역구 예산 목록과 규모, 불용될 걸 알면서 편성한 낭비 예산 목록, 편성 근거조차 남기지 않은 예산 등을 찾아내 모두 공개했다. 회의록에 등장한 의원들을 찾아가 되물었고, 예산이 편성된 사업 현장도 찾아가 검증했다.

은행 대출심사만도 못했던 예산 심의

보람도 느꼈지만, 그에 못지않게 불편함, 불쾌함, 분노가 커졌다. 선험적으로 예산 편성에 구멍이 많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까지 노골적일 것이라곤 예상치 못했다. 원칙은커녕, 국회 스스로 만든 법과 지침을 무력화시키며 마구잡이식으로 세금은 편성됐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교수의 “은행 대출심사만도 못한 예산 심의”라는 표현이 가장 정확했다.

예산 심사는 어김없이 올해도 예정돼 있다. 제대로 된 심사가 선행되지 않으면, 효과적 예산 집행, 엄격한 예산 결산은 기대할 수 없다. 예산의 악순환이다. 이런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문제 예산은 물론, 관련된 의원들도 모두 공개했다, 시민들이 알아야 악순환을 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보도는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양의 고민과 고생을 한 정형택, 엄민재, 박수진, 김학휘 안혜민, 주범, 이용한, 정상보 기자, 김경연, 정순천 등 동료 저널리스트들의 집단지성의 결과다, 망설이는 후배들에게 새로운 시도를 적극 권장하고, 몸소 보여주는데 주저하지 않은 이주형 부장, 진송민 차장에게도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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